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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서재

180814 타자감_유리알 유희

 

 

 

 

자, 이제 그만 자기로 하세. 자네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지.

곧 다시 들르게나. 그래서 자네에 대해 더 이야기해 주게. 나도 자네에게 이야기하게 될 테고. 그러면 자네도 알게 될 거야. 발트첼이나 명인의 삶에도 문제와 환멸, 그래, 절망과 마성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은 귀를 음악으로 가득 채우고 잠자리에 들도록 하게. 자기 전에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고 귀를 음악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자네에게 그 어떤 수면제보다 나을 거야." 그는 자리에 앉아 주의 깊게 아주 나직한 소리로 퍼셀의 소나타 제1악장을 연주했다. 야코부스 신부가 좋아하던 곡이었다. 그 음향은 황금빛 광채의 물방울처럼 정적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너무나 나지막했기 때문에 사이사이에 안뜰에 흐르는 오래된 샘물의 노랫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 사랑스러운 음악 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엄격하게,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감미롭게 서로 마주치고 얽히며 시간과 무상의 허무 속으로 씩씩하고 명랑하게 내면에서 우러나는 윤무를 계속했다. 그러고는 음악이 이어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공간과 밤의 시간이 넓어지며 우주만큼 부풀어 올랐다. 요제프 크네히트가 손님과 작별할 때, 손님은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밝은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 <유리알 유희> (1)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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